The Dotard and Rocket Man



□ Prologue

제목을 써 놓고 보니 김정은이 확실히 싸가지가 없네요. 영어로 써보니 우리말로 어감이 잘 전달되지 않지만 Rocket Man 보다야 Dotard가 확실히 욕설에 가깝죠.

저는 아직도 트럼프가 정의용 실장을 통한 김정은의 협상제안을 받아들인 것이 적절한 타이밍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미가 대북제재와 압박을 하다가 실효성 있는 제재가 시작된 지 겨우 몇 달 만에 협상제안을 덜컥 받아버린 것이 아직도 아쉽습니다. 한미가 대북제재와 더불어서 군비확장을 지속했다면 북한이 한미보다 먼저 지칠 것이고, 그렇게 북한이 지쳐서 버티지 못해 스스로 핵무기를 포기하기로 결심해야만 핵폐기의 신뢰성을 부여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1]

그러나, 지난번에 포스팅한 것처럼 일단 북핵의 폐기를 위한 협상이 시작된 이상 이 협상은 반드시 타결되어야 합니다. 만약 협상이 결렬된다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덮고 넘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무엇이든 후속조치가 있기 마련이지요. 빅터 차 교수는 협상을 철저히 준비하지 않으면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경고했었죠. [1]

북미의 정상회담이 다가오니 다시 북핵 협상관련 포스팅을 이어 나가야겠습니다. 이 글에서는 협상가로서 트럼프와 김정은, 그리고 각자가 놓인 협상의 내부환경을 진단해보겠습니다.

□ The Dotard

트럼프는 확실히 어수선한 사람이었습니다. 싸가지 없이 대응하는 김정은을 향해 회담취소를 통보했다가 김정은이 숙여오니 금방 다시 회담을 받아주었습니다. 사업가 출신답게 최후통첩 제안에 능숙함을 보여주었죠. 트럼프 식의 최후통첩은 거래를 흥정할 때 자주 나타나는 방식입니다. 엄마들이 가격흥정을 하다가 토라져 돌아서 버리면 상인이 뛰어나와 팔을 붙잡으면서 물건의 가격을 깎아주는 식입니다.

사업가로서는 성공했다 하지만 정치가로서 트럼프는 한계가 많은 사람입니다. 미국의 대통령들은 대부분 상원의원, 주지사, 부통령 출신이지요. 그런데 트럼프는 미국의 대통령 중 유일하게 정치경력이 전혀 없는 사업가 출신입니다. 공직 경험은 이제 겨우 일년 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죠. 사업가로서 손익을 따지는 데는 탁월하겠지만 정치력과 정무적 감각은 아직 부족할 것입니다. 실제로 그는 미국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장관과 참모를 자주 갈아치웠고 행정부는 아직도 채워지지 않은 빈 자리가 있을 정도로 트럼프의 조직력은 취약함을 드러내었죠.

어수선한 성격에다 자신을 과신하고 있는 정치신인 트럼프가 국제관계는 기본적으로 양면게임(two-level game)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트럼프가 비지니스 협상의 달인인지는 모르겠으나 국가 간의 협상은 비지니스와는 완전히 다르죠. 아마도 트럼프는 자신의 힘을 배경으로 김정은을 적당히 제압하면 합의를 도출할 수 있고 협상의 성과를 가지고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 동력으로 삼으려고 한 듯 합니다.

그러나 양면게임에서는 협상대표들이 벌이는 외형적인 협상보다는 오히려 그 협상과 관련된 쟁점을 논의하는 국가 내부의 의견수렴과정이 협상의 승패를 좌우합니다. 미국의 의회와 북한관련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번 북미의 협상에 회의적인 시각이 많죠. VOA는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 3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북한의 비핵화 가능성에 무게를 둔 응답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합니다[2]. 미국 내에서 이렇게 비판적인 여론은 트럼프의 협상력을 높여 주겠지만 협상을 타결한다고 하더라도 트럼프가 기대하는 만큼 자신에게 정치적 이익으로 돌아오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 Little Rocket Man

김정은은 트럼프처럼 즉흥적이면서 동시에 포악한 성격을 가졌죠. 그는 어리지만 트럼프에 비해 정치경력은 더 많지요. 그는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된지 벌써 6년 반이 되었습니다. 최고지도자로서 정무적 판단력이 트럼프보다 못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집권 초기의 불안함에서 벗어나 북한 내에서 김정은의 통치력은 제법 자리잡은 듯 합니다. 김정일 식의 선군정치에서 노동당 중심의 권력구조로 돌아갔고 대내외 정보.공작을 전담하던 국가보위부의 기능을 쪼개어 대남 정보.공작 기능은 노동당의 통일전선부로 이관했습니다. 김정은 식의 북한정권을 정착시킨 것입니다.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김여정, 리설주가 동시에 판문점으로 와서 평양을 비운 것을 보면 김정은을 대신해서 당.정.군을 통제할 북한정권의 2인자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김정은은 악당이지만 영리한 협상가[1]라고 평한 이유는 자신의 협상목적에 부합되게 자신이 지닌 협상수단을 적절히 활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작은 나라지만 북한의 외교력은 상당합니다. 북한의 외교관들은 상대국가를 수십년간 담당해온 베테랑들이지요. 정치적.외교적 메세지의 파급력은 메세지의 일관성에서 비릇됩니다. 북한은 1차핵실험 당시부터 자신들의 핵개발은 미국의 적대행위로 인한 자위권을 위한 것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해왔고 한국에서도 북한의 이러한 주장에 동조하는 세력이 다수 확보되었죠.

이번에 협상국면에서 김정은은 북핵의 폐기를 위한 협상을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협상으로 전환을 시도했고 상당부분 성공했습니다. 특히 한국에서 북핵의 폐기보다는 한반도 평화정착 이슈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 보입니다. 김정은은 한국 정부의 이벤트 연출력을 이용하여 한 번의 남북정상회담으로 한국에서 대통령 국정지지율보다 자신의 신뢰도를 더 높게 만들었습니다. 김정은이 필요할 때 한국의 대통령을 불러내면 문재인이 아무도 몰래 부리나케 판문점으로 달려가도 한국인들은 문제 삼지도 않을 상황이 되었죠.

북한은 독재국가지만 북미협상을 위한 북한의 내부환경이 김정은에게 호의적이지만은 않습니다. 김정은이 이른바 강성대국 건설을 위해 핵개발을 서두르는 바람에 불가피하게 놓친 것이 있습니다. 바로 북한군입니다.

고난의 행군 시절 김정일은 다 굶어 죽더라도 군대만은 유지하기 위해서 선군정치를 시행했습니다. 선군정치 하에서 군의 각 부대는 각종 경제사업을 운영함으로써 자생력을 확보했었죠. 김정은은 중국식 개방을 추진하던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하고, 핵개발에 재정을 집중투자하기 위해서 군이 가지고 있던 각종 사업권을 당으로 회수했지요. 북한에서는 군이 중앙의 재정에 의존하지 않고 군인의 생계를 조달해야 하는데 군이 가지고 있던 이권이 확 줄어버렸으니 북한군은 쫄쫄 굶게 생겼습니다. 휴전선 일대에 집중 배치된 북한군 병사들이 북한의 민가를 덮쳐 먹을 것을 도둑질해간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군은 국방을 책임지고 국가는 군을 부양해야 합니다. 국가가 군을 부양하지 못하면 군부에서는 자체적으로 군벌(軍閥)이 형성되기 쉽습니다. 김정은 정권에서 군부 지도부의 잦은 교체도 김정은이 군부에 위협을 느낀다는 반증일 수 있지요. 게다가 대남 정보.공작 기능을 통일전선부로 넘긴 국가보위부도 향후 있을지 모를 대남사업에서의 이권을 잃어 소외감을 갖고 있을 수도 있겠죠.

결국 휴전선 일대에 집중 배치된, 형성되었을지도 모를, 군벌들과 북한정권 수호의 첨병이라던 국가보위부가 북미의 협상에 호의적이지만은 않을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김정은으로서는 자신의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서 핵탄두를 완전히 포기할 수는 없는 이유가 있는 것이지요.


[1] 남북 & 북미 정상회담, 적기였나?
https://forestofscholar.blogspot.com/2018/04/blog-post_24.html

[2] [전문가 30인 설문] “북 완전한 비핵화, 협상으로 달성 못해”
https://www.voakorea.com/a/441346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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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에 대한 코멘트도 조금 덧붙이겠습니다.

제가 문재인을 Broker라고 지칭하면서 또 “보상이든 선물이든 북한의 핵폐기와 검증이 완결되기 전에 시작된다면 문재인은 Devil’s Advocate입니다”[3]고 하니 누군가가 “참내 문재인이 브로커?? devil's advocate ??? ㅋㅋㅋ 무슨 조선일보 사설에나 실릴법한 내용이네.. 만약 위 글이 신문 사설에 실렸다면 난 바로 신문지 찢어버렸을거다”고 저를 비난하더이다.

중재자(mediator)와 중개인(broker)은 유사어지만 조금 다릅니다. Mediator는 이해관계자 쌍방의 의견을 수렴하고 조정하여 자신의 중재안을 쌍방에 제안하는 역할을 합니다. 반면에 자신이 조정안을 만들어 쌍방에 제안하는 것은 아니고, 거래당사자를 주선하는 역할을 하는 자는 Broker가 맞습니다. 예컨대, 주식시장에서 주식거래를 연결해주는 증권회사나 은행간외환시장에서 외환거래를 연결해주는 중개회사를 Broker라고 하지요.

북미의 핵협상 국면에서 문재인은 본인 스스로 북미 양쪽의 협상을 주선(촉진?)하는 역할이라고 말해왔으므로 본인의 의사를 반영하여 Broker라고 지칭한 것인데 이게 뭐가 섭섭한지???

문재인은 지난 주말에 김정은을 만나서 CVID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음을 내비쳤고 기자회견에서 종전선언을 희망한다는 점은 명확히 했죠[4]. CVID나 종전선언에 대한 가치판단을 떠나서, 트럼프가 원하는 CVID는 말하지 않고 김정은이 원하는 종전선언은 만천하에 강조한 것입니다. 저는 문재인이 Devil’s Advocate임을 확신합니다.

[3] Negotiator or Broker?
https://forestofscholar.blogspot.com/2018/04/negotiator-or-broker.html

[4] [일문일답] 문재인 대통령 4차 남북정상회담 직접 설명
http://news1.kr/articles/?3328071


#북미정상회담  #북핵  #DonaldTrump  #Dotard  #KimJong-un  #Rocket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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