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협상게임의 내쉬균형



□ 전략

싱가폴에서 열릴 북미정상회담이 이제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북핵 협상게임의 경기자인 트럼프와 김정은, 그리고 각자가 놓인 협상의 내부환경에 대한 진단[1], 그리고 북한의 비핵화 프로그램 내용과 비핵화에 따른 보상체계 전망[2]에 이어서 이 글에서는 북핵 협상게임의 내쉬균형을 찾아 협상의 합의를 예상해 보고자 합니다.

게임이론에서 전략(strategy)이란 경기자가 선택할 수 있는 행동계획을 의미합니다. 알려진 바와 같이 싱가폴의 회담에서 김정은은 비핵화 방법을 선택해야 하는데, 자신이 주장하던 소위 ‘단계적 조치’를 선택할 수도 있고 미국이 요구하는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를 수용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직전의 포스팅[2]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가 미국이 요구하는 CVID와 북한이 주장하는 ‘단계적 조치’ 사이에 구체적이고 기술적인 차이를 파악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여기서는 김정은이 선택가능한 전략 중 ‘단계적 조치’는 2년 이상 또는 부대조건을 추가한 비핵화를, CVID는 2년 이내의 비핵화를 의미한다고 합시다.

트럼프는 북한의 비핵화에 따른 보상체계를 선택해야 하는데, 북한은 이른바 ‘동시적 조치’를 요구하고 있고 미국의 입장은 비핵화의 ‘완결후 보상’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요. 여기서 보상내용은 대북 경제제재 해제와 같은 경제적 보상일 수도 있고, 미국의 불가침 공약, 한국을 위한 미국의 핵우산을 제거,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그리고 북미수교 등이 있을 수 있겠죠[2]. 이 글에서는 일단 보상내용보다 보상의 시기를 기준으로 트럼프가 선택가능한 전략을 ‘동시적 조치’와 ‘완결후 보상’으로 분류하겠습니다.

□ Payoff

각 경기자가 선택가능한 전략들을 식별했으면, 다음으로 경기자들의 전략적 선택에 따라서 각자 얻게 되는 Payoff를 평가해야 합니다.

김정은과 트럼프가 각자 (단계적 조치, 동시적 조치)라는 전략을 선택한 경우를 고려해봅시다. 먼저 김정은은 ‘단계적 조치’로 비핵화의 시간을 지연시킬 수 있으므로 합의에서 이탈할 기회, 즉 핵무기를 동결한 채 비핵화를 중단하여 사실상 핵보유국의 입지를 갖겠다는 목적을 이룰 수 있습니다. 거기다가 미국의 ‘동시적 조치’로 인해 비핵화를 완결하기 전에 먼저 보상을 받게 되므로 경제발전의 기회도 갖게 될 것이며, 핵보유에다 동시적 조치까지 수혜받으니 김정은은 북한의 수령으로서 최대의 업적을 쌓아 김정은 정권은 체제안정까지도 보장될 것입니다. 반대로 (단계적 조치, 동시적 조치)의 경우 미국과 국제사회는 북한의 핵동결 위험에 놓이게 되고 김정은과의 협상에서 완전히 패배함에 따라 트럼프는 미국의 국내에서 정치적으로 상당한 곤경에 처하게 되겠지요.

다음으로 게임행렬 1행2열의 (단계적 조치, 완결후 보상)의 전략이 선택된 경우를 가정합시다. 이 경우 ‘단계적 조치’에 따라 역시 김정은은 핵보유의 기회를 갖게 되며 다만 장기간에 걸친 비핵화를 선택하면서 비핵화가 완결된 후에야 보상을 받게 되니 국제사회로부터 대북 경제제재를 받는 상황은 지속되는 단점이 있겠죠. 트럼프의 경우 여전히 북한의 핵동결 위험에 놓이게 되고, 다만 북한의 비핵화가 완결되기 전에는 아무런 보상도 약속하지 않았으니 국내에서 겪을 정치적인 곤경은 완화될 것입니다.

게임행렬 2행1열의 (CVID, 동시적 조치)를 합의한 상황은 해석하기 애매합니다. 김정은이 2년 이내의 빠른 시일 내에 비핵화 완결을 수용했는데 트럼프는 그보다도 더 빨리 보상을 시작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즉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시작하기만 하면 그와 동시에 보상을 한다는 것이죠. 서로 상대가 원하는 것을 수용하는 것인데, 이것은 두 정상이 각자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협상의 내용보다는 협상의 타결 그 자체에 목적을 두는 경우에 발생하기 쉽습니다. 그렇다면 협상의 합의내용은 부실해지기 쉽고 북한의 비핵화는 이른바 SVID (Sufficient VID, 충분한 비핵화)에 그칠 위험이 큽니다. 김정은의 입장에서는 이 경우 비핵화 완결시한이 짧기 때문에 핵동결 기회가 많지 않겠지만 트럼프와 정치적 이익을 공유하는데 묵시적으로 합의할 수 있다면 북한은 핵보유가 가능할 것이고, 미국의 ‘동시적 조치’를 받으니 경제발전의 기회도 얻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협상이 (CVID, 완결후 보상)으로 타결되는 것은 바로 미국이 원하는 것입니다. 북한이 비핵화를 진행하면서 CVID가 완결되어야 보상이 시작되는 메커니즘은 북한이 비핵화를 성실히 이행할 유인(incentive)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북한의 비핵화가 ‘공식적으로’ 완결되면 미국과 국제사회는 현재의 이란 수준으로 북한의 NCND(neither confirm nor deny) 위험만 부담하면 되겠죠. 그러나 김정은 정권은 이른바 미제(美帝)에 굴복함에 따라 군부의 반발에 직면할 수 있어 체제불안 요인이 될 수 있겠습니다.

□ 내쉬균형

이제, 협상결과를 예측하기 위해 내쉬균형(Nash equilibrium)을 찾아봅시다. 우선, 김정은이 ‘단계적 조치’를 선택한다고 가정하면, 정치적 곤경에 빠지게 되는 ‘동시적 조치’보다는 ‘완결후 보상’이 트럼프의 최적반응(best response, ★)이 됩니다. 김정은이 CVID를 수용한다고 가정하면, SVID 위험보다는 NCND 위험이 상대적으로 위험이 더 적으므로 트럼프의 최적반응은 역시 ‘완결후 보상’이 됩니다. 마찬가지 방식으로, 트럼프가 ‘동시적 조치’를 수용한다고 가정하면 CVID보다는 ‘단계적 조치’가 김정은의 최적반응이 되는 것은 당연하지요. 트럼프가 ‘완결후 보상’을 선택하는 경우 김정은의 최적반응은 역시 ‘단계적 조치’가 됩니다.

이상 각자의 최적반응을 종합하면, 게임행렬의 1행2열에서 두 경기자의 최적반응이 교차(★★)하므로 두 경기자가 각자 (단계적 조치, 완결후 보상)이라는 전략을 선택하는 것이 내쉬균형이 됨을 알 수 있습니다. 도출된 내쉬균형은 이번에 북핵 관련 김정은과 트럼프의 협상게임에서 북한은 2년 이상 또는 부대조건을 추가한 비핵화를 실시하고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가 완결된 후에 보상을 시작한다는 합의에 이를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저는 4월 24일에 위와 같은 게임행렬을 메모지에 그려보고 북미의 협상이 타결되되 북핵은 폐기되지 않은 채 시간만 지연되리라 예상했었습니다[3]. 당시는 남북정상회담 전후로 모두 김정은은 악당이 아니고 북한은 핵을 완전히 폐기할 것이며 금방이라도 ‘착한 통일’(?)이 될 것이라 믿었었죠. 심지어 전문가라는 사람들도 방송에 나와 북한에 대한 ‘기억조작’(?)에 일조하느라 여념이 없었죠. 저처럼 북핵 협상을 비관적으로 전망하거나 신중론을 펼치는 사람은, 온라인뿐만 아니라 심지어 오프라인에서도,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에 역행하는 전쟁광이자 수구꼴통이라는 낙인이 찍히기 일쑤였습니다.

물론 협상이 (단계적 조치, 완결후 보상)이라는 내쉬균형에 이를 것이라는 저의 예상이 틀릴 수도 있겠죠. 사실은 저도 내쉬균형을 찾아보기 전에는 김정은과 트럼프가 서로 상대가 원하는 것을 수용하는 (CVID, 동시적 조치)로 협상이 귀결될 것이라고 예상했었습니다. 협상이란 기본적으로 협조적 게임(cooperative game)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맞고 틀리고가 그들의(?) 거창한 목표인 민족의 염원 평화통일과 세계평화의 달성에 무어 그리 영향이 있겠습니까? 보다 중요한 것은 북핵 협상에 대한 저의 전망이 비록 소망스럽지는 못하더라도 나는 한국의 청와대와 북한의 조선노동당이 펼치는 선전(propaganda)에 현혹되지 않았으며 비판적 사고에 입각하여 나름의 지성(知性)을 유지했다는 점에 스스로 위안을 삼겠습니다.

그간의 보도들을 살펴보니 남북정상회담 이후 불과 한 달여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미국의 정치권과 전문가들부터 북핵 협상의 신중론이 제기되었고, 이제는 저의 내쉬균형처럼 미국에서는 북핵 폐기에 비관적 전망이 우세하고 국내의 전문가들도 비관적 전망을 내놓기도 하는 듯 합니다.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그나마 최소한의 자존심은 있는 모양입니다.

□ 해석

직관적으로 생각하면 (단계적 조치, 완결후 보상)이 내쉬균형이 된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북한이 시행할 비핵화 방법으로서 ‘단계적 조치’와 미국이 제공할 비핵화 보상체계로서 ‘완결후 보상’ 전략이 서로 조화롭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김정은과 트럼프가 서로 상대가 요구하는 것을 수용하지 않고 자신이 가진 것을 양보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단계적 조치, 완결후 보상)이라는 내쉬균형은 협상을 아예 안한 것과 같아 보입니다.

서로 전혀 조화롭지 않은 전략으로 구성된 (단계적 조치, 완결후 보상)이라는 내쉬균형을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은 내쉬균형을 구성하는 전략들이 조화롭지 않으므로 실제의 협상은 결렬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싱가폴까지 날아온 김정은이 북한으로 살아서 돌아가려면 회담장을 박차고 나오지는 못할 것이며, 트럼프도 협상을 단번에 결렬시키면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냥 넘어갈 수는 없으므로 보다 강한 군사적 옵션을 동원하여 한반도 주변의 분위기를 더욱 험악하게 만들라는 요구에 직면할 것인데 트럼프도 그러한 험악한 분위기를 감당하고 싶지는 않으리라 봅니다.

이 협상은 정상회담으로부터 시작하는 Top-down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비핵화와 보상의 원칙수준의 합의만을 담은 내쉬균형은 달성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국가 간의 협상은 Bottom-up 방식으로 진행되므로 먼저 실무책임자들이 디테일을 협상하여 합의에 이르면 상위의 협상테이블로 상신됩니다. 따라서 각자의 손익을 세밀하게 따지는 디테일에서 이익의 균형이 맞지 않으면 상위의 테이블로 옮겨가기 전에 협상이 깨지기 쉽지요. 그런데 Top-down 방식으로 진행되는 협상에서는 최상위의 협상테이블에서 서로 원칙적인 사항들만 합의하고 세밀한 사항들은 후속의 실무협상으로 넘기기 때문에 원칙적인 사항들만 합의할 최상위의 협상가들이 처음부터 협상을 깨버릴 유인은 적은 것입니다. 따라서 트럼프와 김정은은 자신들이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고 실무책임자들에게 부담을 떠넘기기 위해서라도 미려하면서도 모호한 외교적 수사들로 채워진 합의에 이를 이유가 있는 것이죠.

제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인데, 요 며칠 사이에 트럼프의 발언을 살펴보니 북핵 회담의 연장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트럼프는 북한의 ‘단계적 조치’를 수용하기 어렵지만 협상을 단번에 결렬시키는 것도 회피하기 위해서 북핵 위기를 일단 톤다운 시킨 후에 시간적 여유를 가지면서 이 국면에서 완만하게 빠져나갈 수 있는 퇴로를 열어두려는 것일 겁니다. 퇴각했다가 다음 기회에 다시 회담을 열고, 또 합의가 안 되면 또 회담을 연장하는 식으로 합의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 연장하는 것입니다. 협상을 단번에 결렬시켜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드는 것보다는 이게 더 낫습니다. 만약 합의에 도달할 때까지 협상이 계속 연장된다면 일반적으로 지구력(持久力)이 더 큰 쪽이 더 많은 이득을 얻게 됩니다. 제가 지금은 북핵 협상의 적기가 아니며 대북 경제제재와 군비경쟁을 지속해야 북한이 한미보다 먼저 지치리라고 보았던 이유이기도 합니다[3].

현실적으로 두 경기자는 협상에서 혼합전략(mixed strategy)을 사용할 것입니다. 여기서 경기자별 순수전략(pure strategy)을 혼합할 확률을 배분하기는 어렵습니다만 순수전략내쉬균형이 (단계적 조치, 완결후 보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트럼프는 ‘동시적 조치’와 ‘완결후 보상’을 혼합하되 ‘완결후 보상’에 더 가까운 전략을 선택하리라 예상됩니다. 예컨대, 북한의 비핵화 진행에 따라 대북 경제제재는 부분적으로 해제해 주다가 비핵화가 완결된 후에야 북한이 원하는 이른바 체제보장 조치를 들어주는 것입니다. 김정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사실상 ‘단계적 조치’에 가깝도록 ‘단계적 조치’와 CVID를 혼합한 전략을 선택하는 겁니다. 예컨대, 북한이 ‘자진해서 대외적으로 신고하는’ 핵무기와 핵물질은 2년 내에 폐기하고 핵사찰과 검증은 천천히, 시간을 둬가면서, 분위기 좋을 때 하기로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단계적 조치, 완결후 보상)이라는 내쉬균형이 협상을 아예 안한 것과 같아 보입니다만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약속’이라 할지라도 사실은 트럼프와 김정은이 이와 같은 내쉬균형 또는 혼합전략내쉬균형에 합의할 유인이 있습니다.

미국우선주의에 사로잡혀있는 트럼프는 김정은의 ‘단계적 조치’를 수용하더라도 미국에 도달할 수 있는 북한의 ICBM만큼은 조속히 제거하고 싶겠죠.

김정은의 경우 이미 얻은 것들이 상당합니다. 이미 북중 국경의 삼엄함은 완화되었고 중국과 러시아를 뒷배로 얻었습니다. 한반도의 남쪽에서는 북핵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하고 철도든 공항이든 퍼주고 싶어서 안달이 난 채로 대기타고 있는 문재인이 있습니다.

비핵화의 ‘단계적 조치’에 합의할 수 있다면 김정은에게 이 게임은 북한이 사실상의 핵보유국임을 미국으로부터 공인받는 과정으로 이용될 수 있습니다. 이미 생산한 핵탄두 중에서 일부를 미국으로 반출하여 미국이 이 핵무기의 실효성을 입증해준다면 김정은은 비핵화를 계속 진행할 것인지 아니면 합의를 깨고 만천하에 실효성이 입증된 핵을 보유할 것인지 옵션을 쥐게 됩니다. 북한이 사실상의 핵보유국이 되려는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지요.

북핵 협상게임은 내쉬균형에 이르면 사실상 김정은이 승리한 게임입니다.


[1] The Dotard and Rocket Man
http://forestofscholar.blogspot.com/2018/05/the-dotard-and-rocket-man.html

[2] 북한 비핵화 프로그램과 보상체계 전망
http://forestofscholar.blogspot.com/2018/06/blog-post.html

[3] 남북 & 북미 정상회담, 적기였나?
http://forestofscholar.blogspot.com/2018/04/blog-post_2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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