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비핵화 프로그램과 보상체계 전망



□ 프롤로그

한국 사람들은 ‘소망’과 ‘전망’을 자주 혼동합니다. 어떤 일에 대해서 전망할 때 자신의 소망을 담아 전망하려하죠. 자신의 소망대로 전망하지 않는 자를 비난하기도 합니다. 그런 전망을 한 자의 소망이 뭔지도 모르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소망과 전망은 아주 다른 것입니다. 어떤 일의 결과를 전망하려면 규범적 가치관을 개입시키지 말고 마치 추리소설의 결말을 예측하듯이 이성적으로 전망해야 합니다.

저는 북한의 핵에 관한 북미의 협상이 타결되어 북한의 핵과 핵프로그램이 완전히 폐기되고, 북한주민들의 자의식에 각성이 일어나 인권을 찾으며 북한이 개방되고 남북이 교류협력하면서 공존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나 그간에 한반도 안보를 둘러싼 중요한 사건들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4월 24일에 했던 북핵은 폐기되지 않은 채 시간만 지연되어 위장된 평화가 도래할 것이라는 전망을 변경하지 않겠습니다.

결과를 먼저 예상해놓고 트럼프와 김정은의 협상을 전망하려니 싱겁긴 합니다만 소망스럽지 못한 전망을 내놓은 이유는 풀어써야 하겠지요. 우선 이 글에서는 북미의 협상결과를 예상하기 위해 북한의 비핵화 프로그램 내용과 비핵화에 따른 보상체계를 정리해보겠습니다.

□ 이란 핵 합의

실제 우리가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합의내용이 구체적으로 어떠할지는 예상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트럼프가 파기한 ‘이란 핵 합의’ 내용을 바탕으로 북한 비핵화 프로그램의 최소한의 요구조건을 예상할 수는 있습니다. 트럼프가 야바위꾼이 아니라면, 아직 핵무기를 갖지 않은 이란보다 핵무기를 생산했다고 여겨지는 북한에 더 약한 제한을 가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란 핵 합의는 2015년 7월 14일, 이란과 주요 6개국(5개 유엔안보리상임이사국과 독일)이 오스트리아 수도 비엔나에서 이란 핵문제 해결을 위해 채택한 ‘공동포괄행동계획’(Joint Comprehensive Plan of Action Regarding the Islamic Republic of Iran’s Nuclear Program: JCPOA)을 말합니다. JCPOA는 본문과 5개 부속문을 포함하여 모두 109쪽에 걸친 방대한 합의문이라고 합니다. 여기서는 JCPOA에 대한 세종연구소 정은숙 박사의 설명(2015.8)을 요약합니다. [1]

- 핵관련 합의: 이란 장기계획 하 첫 8년간 특정 R&D 포함, 제반 우라늄농축과 우라늄농축관련 활동을 제한한다. 이후 단계에서 점진적으로 평화적 목적의 농축을 수행한다.
- 핵관련 합의: 아라크 중수연구원자로를 재설계, 재구축하여 평화적 핵연구 및 의료와 산업 목적의 방사성동위원소 생산에 사용, 무기급 플루토늄을 생산하지 않는다. 미래 에너지와 연구를 위해 경수에 의존하는 국제적 기술추세에 부응하여 15년간 중수로 추가건설 혹은 중수축적을 하지 않는다. ‘사용후 연료’는 국외로 이전한다.
- 투명성과 신뢰구축 조처 합의: IAEA의 사찰과 검증을 통해 이란 핵 활동의 평화성을 보장한다.
- 제재관련 합의: 이란의 핵관련 이행에 대한 IAEA 검증과 동시에 국제사회의 각종 대이란 제재가 해제의 길에 들어선다.
- 이행계획 합의: 유효기간을 10년(2015년-2025년)으로 보고 5개 주요 이정표로 설정했다.
- 분쟁해결기제 합의: 이란 혹은 6개국 중 누구도 ‘공동위원회’에 제소할 수 있다. 연장합의가 없으면 여기서 15일 내에 해결한다. 해결이 안되면 외무장관회의에 상정, 15일 내에 해결한다. 30일 과정에서 해결이 안되면 해당국은 ‘공동포괄행동계획’ 내 자신의 의무 전체 혹은 부분적 비준수 사유를 유엔안보리에 통고한다. 안보리가 30일 내에 계속적 제재해제 결의를 하지 않으면, 기존의 안보리 제재결의가 전부 혹은 일부 복원된다.

트럼프가 이란 핵 합의를 파기한 이유가 이란 핵능력 제한을 10-15년 한정한 ‘일몰규정’에 강한 불만을 보이면서, 이를 삭제함으로써 영구적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탄도미사일 제한규정이 핵 합의에 담기지 않은 점도 문제라고 봤고, 여기에 핵 프로그램의 평화적 목적 이용에 대한 검증이 불가능하고 군사기지 사찰이 제한되며 처벌조항이 없다는 점 등도 비판했다고 합니다. 국제사찰단이 요구하는 모든 장소에 대한 즉각적 사찰이 허용돼야 한다고도 주장했다고 합니다. [2]

□ 북한 비핵화 프로그램

북한이 이란과 다른 점은 이미 핵탄두를 생산했다고 여겨지며 북한 자신도 핵보유선언을 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북한에 대해서는 기존 생산된 핵탄두와 ICBM의 처리문제가 중요한 문제가 될 것임은 당연하지요.

보도들을 보면 북한에서 기존에 생산된 핵탄두를 조속히 미국으로 반출할 것을 트럼프가 요구하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기존에 생산된 (미국을 위해) ICBM과 (일본을 위해) IRBM을 해체하거나 국외로 반출을 요구할 수도 있겠죠. 그리고 트럼프가 이란 핵 합의에 불만을 품었다는 이유를 감안하면 북한 비핵화 합의에 탄도미사일 제한규정을 둘 것이고 위성으로 추적.감시와 신속대응이 어려운 이동식발사대의 제한규정을 포함할 가능성도 있지요.

이란 핵 합의와 같이 미국과 북한의 관리들이 참여하는 핵.미사일통제위원회를 설치하여 북한의 비핵화를 통제하리라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역시 이란 핵 합의처럼 북한의 우라늄농축 제한, 플루토늄 생산 금지, 중수로 불능화 및 건설 제한, 기존 생산된 핵물질을 국외로 이전하되, 이란 핵 합의를 파기했던 트럼프의 선호가 일관성을 지닌다면 북한에 대해서는 일몰규정이 아니라 영구적 조치를 요구하리라 예상됩니다.

북한에 대한 IAEA 또는 미국의 직접 사찰과 검증은 합의에 포함되겠죠. 다만, 사찰과 검증의 강도가 어느 정도일지는 예단하기 어렵습니다. IAEA가 군사시설을 임의로 사찰하지는 못하지요. 북한은 탄도미사일 문제가 있는데다 핵무기를 이미 생산해서 보유하고 있고 일부는 배치했다고도 여겨지므로 트럼프가 북한에 대한 사찰과 검증을 IAEA에게만 맡기려고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란 핵 합의처럼 북한의 경우에도 분쟁해결기제는 합의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고 포함되어야 할 것입니다.

미국이 요구하는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는 조지 부시 행정부 1기 때 수립된 북핵 해결의 원칙이라 합니다. 다만, 우리가 미국이 요구하는 CVID와 북한이 주장하는 ‘단계적 조치’ 사이에 구체적이고 기술적인 차이를 파악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저는 결국 양자간의 차이는 CVID 수준의 비핵화까지 기한을 얼마로 잡느냐의 문제로 취급할 수 있다고 봅니다. 트럼프의 재선을 위한 선거 전인 대략 2년 이내로 북한이 비핵화의 완결을 약속한다면 미국이 요구하는 CVID를 수용한 걸로 볼 수 있겠죠. 그러나 장기간에 걸쳐 또는 기한 없이 완결을 약속하거나 검증 및 폐기절차에 부대조건을 단다면 단계적 조치와 같은 것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 비핵화 보상체계

비핵화에 따른 보상체계에 대하여 북한은 ‘동시적 조치’를 요구하고 미국의 입장은 비핵화의 ‘완결후 보상’에 있는 것 같습니다. 북한이 요구하는 ‘동시적 조치’라는 말은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각 단계별로 실행할 때마다 한미가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동시에 취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상응하는 조치는 경제적 보상일 수도 있고 이른바 북한의 ‘체제보장’일 수도 있습니다.

경제적 보상으로서 대북 경제제재를 해제할 경우 이란 핵 합의와 같은 분쟁해결기제가 필요할 것입니다. 즉 북한이 비핵화를 성실히 이행하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유엔안보리의 제재가 복원되는 메커니즘이 있어야만 과거처럼 북한의 핵개발은 막지 못한 채 북한이 이익만 챙겨가는 사태를 방지할 수 있지요.

북한이 요구한다는 ‘체제보장’ 관련해서는 미국의 불가침 공약, 한국을 위한 미국의 핵우산 제거,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그리고 북미수교 등이 있다고 알려져 있죠. 사실은 체제보장이란 용어자체가 틀렸습니다. 자기나라의 체제는 자기가 보장하는 것이지 북한의 체제를 미국이 어떻게 보장해준단 말입니까? 한국이든 미국이든 북한이 주장하는 용어를 여과없이 갖다 쓰는 것도 잘못됐죠.

미국의 대북 불가침 공약은 9.19 공동성명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합중국은 한반도에 핵무기를 갖고 있지 않으며, 핵무기 또는 재래식 무기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공격 또는 침공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였다[3].” 아마도 북한은 미 의회의 비준과 같은 보다 확실한 확약을 요구하겠죠.

미국이 한국에 제공하는 핵우산과 관련하여 한겨레신문은 북한이 ① 미국의 핵 전략자산 한국에서 철수, ② 한미 연합훈련 때 핵 전략자산 전개 중지를 제시했다고 보도한 바 있었습니다[4]. ‘핵 전략자산’이란 것은 핵무기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핵투발이 가능한 미사일, 폭격기, 잠수함 같은 군사적 자산을 말합니다. 따라서 이것들을 한국에 전개하지 말고 훈련하지도 말라는 것은 한국을 위한 핵우산을 제거하라는 것입니다.

미국이 한국에 제공하는 핵우산은 제거해선 안됩니다. 북한의 비핵화가 완결된 후에도 한국을 향해 겨누고 있는 중국의 핵미사일은 상존하지요. 북한은 북중동맹을 통해 중국의 핵우산을 받으면서 남한을 위한 미국의 상존하지도 않는 핵우산을 제거하라는 것은 부당한 요구입니다. 또한 한국에서 미국의 핵우산을 제거하면 일본은 곧바로 핵무장할 것이 뻔합니다.

보아하니 문재인은 종전협정을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의 2단계로 분리하여 2회에 걸쳐서 정치적 이벤트효과를 얻으려는 것 같습니다. 계약을 하려면 디테일한 계약사항들을 꼼꼼하게 살펴봐야 합니다. 저는 지난번에 밝힌 바와 같이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의 디테일이 나오기 전에는 찬반여부를 유보하겠습니다[5].

여기서는 종전협정의 내용을 떠나서 종전협정은 북한의 비핵화가 완결된 후에 체결되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분쟁해결기제를 마련할 경우 대북 경제제재는 해제하더라도 다시 복원할 수 있어 가역적인데 반해서 종전협정은 비가역적이기 때문입니다.

비가역적인 종전은 한미에 있어서 간단한 문제만은 아니죠. 유엔사가 해체되면서 미국의 대장급 사령부의 역할조정, 나아가 미 태평양군의 재편 문제까지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한국에게는 종전은 NLL문제 등 국경문제가 첨예한 이슈가 발생할 것입니다. 이것들이 만만찮은 문제들이기 때문에 남북미 3국에서 정치적 휘발성이 높은 이슈로 등장할 것이고 북한의 비핵화 이슈를 덮어버릴 것입니다. 따라서 종전협정에 찬반여부를 떠나서, 북한의 비핵화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비가역적인 종전은 북한의 비핵화가 완결된 후에 진행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북미수교는 글쎄요... 북한은 핵이 아니어도 생화학무기라는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현대의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인권탄압 국가인데 미국이 북한과 수교할까요? 미 의회에서 부결될 것입니다.

□ 에필로그

남북미 3국 정상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한반도를 오히려 더 불안하게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이 글에서 정리한 북한의 비핵화 프로그램과 보상체계가 어느 수준에서 합의될 것인지를 예상하려면 협상결과에 따른 미국과 북한 각자의 손익구조를 살펴봐야 합니다. 며칠 후에 포스팅하겠습니다.


[1] 이란과 P5+1 핵협상 타결: 배경, 전망, 특징과 시사점
http://www.google.co.kr/url?sa=t&rct=j&q=&esrc=s&source=web&cd=7&cad=rja&uact=8&ved=0ahUKEwiBpdTXq7jbAhVKI5QKHcV_DqoQFghIMAY&url=http%3A%2F%2Fwww.sejong.org%2Fboad%2Fbd_news%2F1%2Fegofiledn.php%3Fconf_seq%3D2%26bd_seq%3D480%26file_seq%3D1134&usg=AOvVaw2Q3jfIJBn-znd7QL6s1gJ-

[2] 트럼프의 '이란핵합의' 파기이유는?…"영구적 핵능력 제한" 주장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10073541

[3] 제4차 6자회담 공동성명(2005.9.19., 베이징)
http://www.mofa.go.kr/www/brd/m_3973/down.do?brd_id=247&seq=293917&data_tp=A&file_seq=1

[4] “북, 비핵화 대가 5개안 미국에 제시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8&aid=0002406158

[5] Negotiator or Broker?
https://forestofscholar.blogspot.com/2018/04/negotiator-or-broker.html


#북미정상회담  #북한  #비핵화  #이란핵합의  #체제보장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최저임금 인상이 잘못된 이유 알려준다.

북핵 협상게임의 내쉬균형

The Dotard and Rocket 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