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는 화폐가 아니다!



□ 프롤로그

세간에 암호화폐라고 우겨지는 것들은 코인이라고 이름 붙여진 점수가 누구의 계정에 얼마만큼 기록되어 있는지를 나타내는 가상적 증표에 불과하다. 아마도 최초의 개발자는 이 놀이를 활성화하기 위해 수학문제를 풀면 부여되는 점수를 다른 사람에게 이전 가능토록 했을 것이고, 이전 가능하다는 점에서 점수에다가 코인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그러면 수학문제를 푼 사람이 소정의 대가를 받아야 자신의 코인을 다른 사람에게 이전할 유인이 있고 코인에 소정의 대가가 따른다면 다시 수학문제를 풀려는 사람이 많아져서 이 놀이가 활성화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암호화폐라고 우겨지는 가상증표(virtual token)는 누군가 수학문제를 풀었다는 점수에 불과할 뿐이다.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에다 화폐라는 이름을 마음대로 갖다 붙여 대박의 욕망을 유혹하는 장난질에 놀아난 인간군상이 한심하다. 사실은 무엇을 화폐라고 하는지, 화폐의 정의부터가 쉽지만은 않은 이론적 지식을 요구한다. 화폐의 기능적 정의에 따르면, 1) 교환의 매개물로 쓰이면서 2) 가치의 척도가 되고 3) 가치의 저장수단이 되는 것을 화폐라고 한다. 그러면, 가상증표가 과연 화폐라고 부를 수 있는지 하나하나 따져보도록 하자.

□ 가상증표는 교환의 매개물(medium of exchange)이 아니다.

현재 가상증표는 화폐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인 교환의 매개물로서의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 전국에 가상증표를 받아주는 매장이 130여 곳에 불과한데다가 이마저도 가상증표를 이용한 결제를 거의 포기한 상태라고 한다.

인류가 교환의 매개물로서 화폐라는 것을 사용해온 이유는 화폐를 이용하면 거래가 편리해져서 거래비용을 낮춰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트코인을 이용해서 결제하려면 시간만 수십분이 걸리기 때문에 지폐나 카드를 사용하는 것보다 훨씬 불편해서 이것을 이용할 이유가 전혀 없다. 게다가 가상증표의 가격은 수시로 등락을 거듭하기 때문에 만약 일식집에서 비트코인으로 결제하기로 하고 음식을 주문했다면 음식을 먹는 동안에도 비트코인 가격이 등락을 거듭할 것이므로 어디 불안해서 음식이 목에 넘어가겠나!

□ 가상증표는 가치의 척도(measure of value)가 아니다.

한국에서는 모든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을 법화인 원화로 표시하므로 원화는 가치의 척도가 된다. 그러나 비트코인 같은 가상증표는 그 자체의 가치가 너무 심하게 등락을 거듭하기 때문에 가상증표로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을 표시하기 곤란하다. 만약 비트코인으로 상품의 가격을 표시하려면 매 분마다 가격을 다시 표시해야 할 것이다.

가상증표가 가치의 척도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은 가상증표의 가격변동성과 연관된다. 가상증표가 가치의 척도 구실을 하려면 변동성이 매우 낮아야 하므로, 가상증표 시장에 참여하는 자들은 가상증표의 가치가 올라 이익을 얻을 것이라는 희망을 모두 포기해야 하고 누군가가 가상증표의 변동성이 극소화되도록 통제하고 관리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가상증표 옹호론자들이 주장하는 자유민간화폐의 이념과 상충되므로 가상증표는 가치의 척도가 되지 못한다.

□ 가상증표는 가치의 저장(store of value) 수단이 되지 못한다.

주식이나 채권과 같은 금융자산이나 부동산 같은 실물자산도 가치의 저장수단이 되지만 화폐가 가치의 저장수단이라는 말은 그것의 구매력과 연관된다. 교환거래는 판매와 구매라는 두 가지 행위로 분리되는데 이 두 행위가 상이한 시간에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판매와 구매 사이에 가치의 가감없이 가치를 보존하는 저장수단이 필요하고 그런 기능을 담당하는 것이 화폐이다. 옷가게 주인이 옷을 팔아 만원을 받았는데 지폐를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만원의 가치가 보존되어 저녁에 식사로 만원짜리 회덮밥을 사먹으면서 가지고 있던 만원짜리 지폐를 지불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가상증표는 가치가 불안정해서 판매와 구매라는 두 시점 사이에 구매력의 저장 기능을 하지 못한다.

가치의 저장수단이라는 화폐의 기능은 화폐가 지니는 유동성(liquidity)이라는 속성과도 연관된다. 어떤 자산의 유동성이란 “명목가치의 손실없이 현금으로 전환되는 속성”을 말하며 환금성(換金性)이라고도 말한다. 현찰은 그 자체가 완전한 유동성을 지니며 은행의 예금은 만기가 짧을수록 유동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가상증표는 명목가치의 손실없이 현금으로 쉽게 전환될지 예단하기 어려우므로 유동성이 있다고 할 수 없다.

이상의 논의에 따르면 가상증표는 그것이 화폐라고 정의될 수 있는 세 가지 기능을 하나라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므로 화폐가 아니다. 정부부처든 언론사의 기자들이든 가상증표를 더 이상 화폐라고 불러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 가상증표는 화폐로 발전하지도 못할 것이다.

가상증표의 옹호론자들은 그것이 비록 지금은 화폐 구실을 못할지라도 향후 화폐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모양인데, 그런 주장 역시 순진한 주장이든가 아니면 기만적인 주장일 뿐이다. 가상증표의 옹호론자들은 아마도 인류가 근대까지 사용했던 자유민간화폐를 이상적인 화폐제도로 여기는 듯 한데, 가상증표의 메커니즘을 보건대 화폐제도가 근대로 되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의 초창기 민간은행들이 발권한 달러도 금이라는 본위화폐를 기초로 발권되었다. 인류가 근대까지 민간에서 지폐를 발권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금과 같은 실물을 본위화폐로 삼아 발권되는 태환화폐였기 때문이다. 물론 금과 같은 본위화폐도 시세가 변동했겠지만 하루에 가격이 20%만큼 오르내릴 정도로 불안정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민간에서는 금을 보유하고 지폐를 발권하여 실물거래에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가상증표는 본위화폐도 없이 민간에서 발행하므로 사람들의 주관적인 심리에 의존하여 가격이 매겨진다. 따라서 가치의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아 미래에도 화폐로 정착될 가능성이 없다.

오늘날 각국의 중앙은행들 중 다수는 과거 민간은행으로서 정부로부터 화폐의 발권권을 부여받은 특허은행들이었다. 그런데 특허은행들은 민간은행으로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일과 자신이 발권한 은행권의 가치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기는 어려웠다. 은행권을 이용하는 고객들은 모두들 은행권 가치의 안정을 요구했고 특허은행들은 점차 물가안정(=은행권 가치안정)을 추구하는 중앙은행으로 변모해갔다.

가상증표를 화폐제도에 비유하자면 채굴업자들이 발권력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현재로서는 물가안정에 대해 중앙은행을 신뢰할 만큼 가상증표 가치안정에 대해 민간의 채굴업자들이 신뢰를 받고 있지도 않을 뿐더러, 시간이 지나면서 가상증표가 화폐로 발전하려면 발권력을 가진 채굴업자들이 자신의 사익을 포기해버리고 가상증표 가치안정이라는 공익에 봉사하는 자원봉사자로만 남아야 할 것인데 누구도 그럴 것이라고 예상하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미래에는 가상증표가 화폐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꿈은 하루빨리 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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