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018의 게시물 표시

북핵의 폐기 or 한반도 비핵화?

이미지
화려한 의전, 외교적 수사, 낭만적 연출로 점철된 남북정상회담을 잘 감상하셨나요? 이제 다시 감상적 민족주의에서 깨어나 정신을 차리고 회담의 결과물로서 명시적으로 공표되고 기록된 ‘판문점 선언’을 해석하고 평가해봐야겠습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저는 이번 판문점 선언은 다소 실패작이라고 봅니다. 학점으로 치자면 아예 낙제점인 F까지는 아니지만 낙제만 면한 C0 정도라고 평가합니다. 이렇게 평가하는 이유를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의 1)~3)과 같습니다. 1) 북한이 원하던 경제지원 사업들을 대부분 약속하고 있다는 점은 부정적입니다. 그럼에도 북한을 지원하기 위한 사업들의 개시 시점을 명시하지 않았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2) 당초 회담의 성과로 예상되던 것들이 후퇴했다는 점은 부정적입니다. 예컨대, DMZ 내 GP를 철수하자는 제안과 남북의 종전선언 제안은 수용되지 않았죠. 3) ‘완전한 비핵화’라는 문구를 삽입했으나 ‘단계적.동시적 조치’라는 북한의 의도가 반영되었다는 점은 매우 부정적입니다. 판문점 선언[1]은 ‘1. 남북 관계의 개선과 발전, 2. 군사적 긴장상태 완화, 3.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3가지 의제를 다루고 있고 의제별로 3~6개 조항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다만, 선언문은 ‘미려한 외교적 수사’들로 가득 차 있어서 이들을 걷어내면 내용이 많지는 않습니다. 여기서는 외교적 수사들을 걷어내고 의제별로 선언문을 해석하고 평가해보겠습니다. 먼저, 의제 #1인 ‘남북 관계의 개선과 발전’ 부문에서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개성지역에 설치하기로 했는데 저는 이를 찬성합니다. 사실은 아예 서울과 평양에 각자 연락사무소를 두는 것이 맞습니다만, 아마도 각자 상대방의 스파이 활동을 염려해서 개성에 쌍방의 당국자가 상주하는 연락사무소로 합의했으리라 추측합니다. 아시안게임 등 국제대회 공동 진출은 저는 반대하지는 않습니다만 보다 젊은 청년층에서 섭섭하게 생각할 수는 있겠죠. 이산가족.친척상봉이야 모두 찬성할 것이고, 동해선 및

전문)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

대한민국 문재인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평화와 번영, 통일을 염원하는 온 겨레의 한결같은 지향을 담아 한반도에서 역사적인 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뜻깊은 시기에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진행하였다. 양 정상은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리었음을 8천만 우리 겨레와 전 세계에 엄숙히 천명하였다. 양 정상은 냉전의 산물인 오랜 분단과 대결을 하루 빨리 종식시키고 민족적 화해와 평화번영의 새로운 시대를 과감하게 열어나가며 남북관계를 보다 적극적으로 개선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확고한 의지를 담아 역사의 땅 판문점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1. 남과 북은 남북 관계의 전면적이며 획기적인 개선과 발전을 이룩함으로써 끊어진 민족의 혈맥을 잇고 공동번영과 자주통일의 미래를 앞당겨 나갈 것이다.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온 겨레의 한결같은 소망이며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의 절박한 요구이다. ⓛ 남과 북은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 자주의 원칙을 확인하였으며 이미 채택된 남북 선언들과 모든 합의들을 철저히 이행함으로 써 관계 개선과 발전의 전환적 국면을 열어나가기로 하였다. ② 남과 북은 고위급 회담을 비롯한 각 분야의 대화와 협상을 빠른 시일 안에 개최하여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문제들을 실천하기 위한 적극적인 대책을 세워나가기로 하였다. ③ 남과 북은 당국 간 협의를 긴밀히 하고 민간교류와 협력을 원만히 보장하기 위하여 쌍방 당국자가 상주하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개성지역에 설치하기로 하였다. ④ 남과 북은 민족적 화해와 단합의 분위기를 고조시켜 나가기 위하여 각계각층의 다방면적인 협력과 교류 왕래와 접촉을 활성화하기로 하였다. 안으로는 6.15를 비롯하여 남과 북에 다같이 의의가 있는 날들을 계기로 당국과 국회, 정당, 지방자치단체, 민간단체 등 각계각층이 참가하는 민족공동행사를 적극 추진하여 화해와 협력의 분

Negotiator or Broker?

이미지
요즘 남북정상회담 관련 뉴스를 보면서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문재인이 김정은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남북정상회담 뉴스를 보면 때로는 우리 정부 당국자의 입으로, 때로는 언론의 북한관련 취재기사로 북한이 원하는 사항들만 보도되고 있을 뿐 문재인 정부가 북한에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이니, 쌍중단-쌍궤병행이니 아무리 외교적 수사로 꾸미려 해도 결국 문재인 정부가 주장하는 북한의 ‘핵동결->폐기’[1]는 북한이 주장하는 ‘단계적 조치’와 같은 것입니다. 정전체제를 끝내고 미국과 종전협정을 맺자는 것도 북한의 오래된 숙원으로서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정권이 대를 이어 요구하던 것이었습니다[2]. 계약을 하려면 디테일한 계약사항들을 꼼꼼하게 살펴봐야 합니다. 보도들을 보니 문재인은 아마도 남북미중의 종전협정 전에 남북의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추진하려는 것 같네요[3]. 저는 지금 남북의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에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협정의 디테일이 나오기 전에는 찬반여부를 유보하겠습니다[4]. 중요한 점은 실제의 협정은 북핵의 폐기가 완료된 후에 논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는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역시 북한이 요구하던 것이지 문재인이 김정은에게 요구하는 것은 드러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협상이란 Negotiator들이 서로 원하는 요구사항을 주고받는 게임이지요. 따라서 문재인이 Negotiator라면 김정은이 문재인에게 요구하는 것처럼 문재인도 김정은에게 요구하는 사항이 있어야 합니다. 서로 상대에게 요구하는 사항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서로 무엇을 수용할 것인지 논쟁과 설득을 해나가는 것이 협상이죠. Time지는 문재인을 Negotiator라고 한 바 있죠. 문재인은 자신을 Driver라고 칭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재인은 언제부턴가 스스로 자신을 ‘중개자’라고 바꿔 말하면서 마치 트럼프와 김정은의 사이를 주선하는 Broker를 자처하고 있습니다.

남북 & 북미 정상회담, 적기였나?

연봉협상을 한다고 합시다. 일반적으로 당신보다 당신의 사장이 협상에서 우월한 지위에 있다고 생각하지요. 그런데 당신이 다른 회사로부터 좋은 조건으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을 경우 얘기는 달라집니다. 다른 회사가 당신에게 제시하는 처우조건이 좋을수록 당신은 당신의 사장과의 연봉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습니다. 여차하면 협상을 파투내버리고 좋은 조건을 제시한 회사로 이직할 수 있으니까요. 이와같이 협상자는 fallback을 가져야만 불리한 상황에 놓이지 않고 협상의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됩니다. 과거 저의 글에서 한국에 핵재처리시설을 갖추어 핵옵션 보유를 주장[1]하거나 미국의 전술핵 배치를 지지[2]한 것은 이것들이 대북 핵협상에서 fallback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김정은은 왜 지금 협상에 나섰나? 처음에는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실효성있는 대북제재가 시작된지 겨우 몇 달 밖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경제제재의 압박에 못 이겨서 백기투항한 것이라는 해석에는 동의하기 어려웠습니다. 김정은은 아직 자신이 보유한 fallback이 소모되지 않았을 때 협상에 임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김정은의 fallback은 아직 ‘고난의 행군’을 시작할 만큼 경제상황이 고통스럽지는 않다는 것, 즉 시간적 여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확히 몇 개인지는 모르지만 이미 확보했다고 알려진 핵탄두 역시 협상의 fallback이 되겠죠. 한국 사람들이 사람을 평가할 때 자주 범하는 착각 중의 하나는 착한 자는 세련되고 현명한 자이고 악한 자는 추하고 멍청한 자라는 것입니다. 선함과 현명함, 악함과 아둔함을 동일시하는 것이죠. 그러나 이들은 동일한 것이 아니죠. 착하면서 아둔한 자도 있고 악하면서 현명한 자도 있기 마련입니다. 김정은은 악당이지만 영리한 협상가입니다. 다시 연봉협상 얘기를 합시다. 스카우트 제의를 협상의 fallback으로 보유하고 있다고 해서 당신의 사장에게 이 사실을 노골적으로 얘기하기는 곤란한 노릇입니다. 그러면 상대방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