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증표는 증권도 아니다!

 
...
 
...



□ 자유민간화폐 실험은 실패했다.

커뮤니티 사이트들을 둘러보면 아직도 암호화폐라고 우겨지는 가상증표에 투자를 은근히 유혹하는 글들이 있지만 로버트 쉴러 교수나 스티글리츠 교수와 같은 경제석학들은 가상증표를 비관적으로 본다. 쉴러 교수는 “비트코인은 완전히 붕괴될 것”이라고 예상하며 스티글리츠 교수는 심지어 “비트코인은 감독 당국의 감독 부족으로 인해 성공한 사기일 뿐”이라며 “비트코인을 불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경제학자들 뿐만 아니라 워런 버핏과 같은 월가의 투자자 역시 가상증표 시장이 “결코 좋지 않은 결말을 낳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경고한다.[1]

지금까지 나온 규제안으로도 완전히 자유로운 민간화폐를 만들자는 가상증표 옹호론자들의 실험은 이미 실패했다. 가상증표 실명거래제를 실시하면 가상증표 옹호론자들의 자유민간화폐 이념은 무너지게 된다. 오히려 법화(法貨) 보다 더 규제를 받는 셈이다. 예컨대 현찰은 추적이 되지 않아 과거에는 만원짜리 지폐를 넣은 사과박스가, 근래에는 오만원짜리 지폐를 넣은 비타500 상자가 뇌물거래 등 지하경제를 형성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가상증표를 실명으로만 거래해야 한다면 현찰거래처럼 정부의 감시가 불가능한 지하경제를 자유로이 형성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벌집계좌를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가상증표 옹호론자들의 자유민간화폐 이념에 스스로 모순되는 거래방식이다. 탈중앙화된 자유로운 민간화폐라고 선전해놓고선 실제로는 중개업자들의 전자지갑을 통해서 가상증표를 사고파는 방식을 정착시켰다면 애초에 탈중앙화된 자유민간화폐 주장은 허울뿐이었고 민간화폐운동을 가장한 사실상 투자권유행위였던 것이다.

□ 가상증표는 증권도 아니다!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상증표는 화폐가 아니라는 점은 인정하는 것 같다. 다만, 가상증표를 투자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마치 유통가능한 유가증권의 일종으로 인식하는 듯하다. 권리가 표시된 증서를 ‘증권’이라고 한다면 ‘유가증권’은 가치가 있는 것에 대한 청구권이 표시된 증서를 말하며 줄여서 그냥 증권이라고 부른다. 그러면 지난 게시글[2]에서 가상증표는 화폐가 아니며 향후 화폐로 발전하지도 못할 것이라는 논거를 제시했으므로 이제는 가상증표가 증권으로서 가치가 없다는 논거를 두 가지 제시해본다.

첫째, 가상증표는 내재가치가 없다. 증권의 내재가치는 그것에 부여된 권리에서 발생한다. 예컨대 채권은 원금과 이자에 대한 청구권이며 이들로부터 시장금리에 따라 현재가치로 할인되어 채권가격이 결정된다. 주식 역시 기업의 잔여재산에 대한 청구권이자 순이익으로부터 배당에 대한 청구권이기도 하고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지닌 지분에 기초하여 내재가치가 평가된다. 그러나 비트코인 같은 가상증표는 애초에 채굴업자가 투자자에게 판매할 때 어떠한 청구권도 보장하지 않는다. 블록체인 기술이 발전하면 비트코인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만 주입시켰을 뿐 어떠한 권리도 보장되지 않았으므로 아무런 내재가치가 없는 것이다.

둘째, 가상증표는 보유자에게 현금흐름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물품증권을 제외한 주식이나 채권과 같은 자본증권은 그것의 보유자에게 현금의 보유(또는 현재의 소비)를 포기하고 불확실한 미래의 위험을 감수하는 대가로 현금형태의 보상이 주어진다. 예컨대 채권은 만기에 찾게 되는 원금뿐만 아니라 매 이자지급 주기마다 이자가 주어지며, 주식의 경우 고정적이지는 않지만 매년 기업경영자의 의사결정으로 배당금이 지급된다. 그런데 가상증표에는 그것의 보유자에게 아무런 보상이 약속되지 않아 사람들이 그것을 보유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내재되어 있지 않다.

□ 실증된 가상증표의 허구성

가상증표 옹호론자들은 박상기 법무부장관의 거래소폐쇄방침 발표 때문에 110조원이 증발했다고 주장하는 모양인데 그것도 논리적 비약이다. 애초에 수학문제를 풀었다는 점수에 불과한 것에다가 비트코인 시가(市價)라는 숫자를 임의로 부여한 것일 뿐이므로 110조원의 가치가 증발한 것이 아니라 110조만큼의 숫자가 바뀌었을 뿐이다.

또한 가상증표 보유자들은 정부가 가상증표 시장을 규제하면 이미 투입된 50조원의 국부가 해외로 유출된다고 주장하는 모양인데, 그 50조는 가상증표 투기자들이 이미 중국의 채굴업자들에게 지불해버린 것이다. 이미 한국에는 그 돈이 없다. 따라서 정부는 그 돈에 대해 책임질 하등의 이유가 없으며, 국부유출이 더 진행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더욱 더 강력한 규제를 시행하여 선의의 신규투자자가 유입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가상증표 옹호론자들이나 순진한(?) 공학자들이 블록체인 기술은 해킹의 위험이 없는 안전한 기술인 것처럼 호도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보도에 따르면 해커들이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 대표적인 가상증표의 약 14%를 훔쳤다고 한다. 1.4%도 아니고 14%라니 오히려 보안이 매우 취약한 것 아닌가? 게다가 해커들은 블록체인에 기록되는 데이터를 위조할 수도 있다고 한다.[3]

□ 가상증표 문제는 강력한 규제가 답이다.

주식과 같은 증권거래도 확률게임의 속성이 있기에 도박의 성격이 아예 없지는 않다만 많은 사람들이 가상증표를 도박과 같다고 비난하는 이유는 애초에 그것의 거래구조부터가 공정(fair)하지 않은 기만적인 눈치게임이기 때문이다. 가상증표는 보유자에게 어떠한 권리도 보장하지 않고 아무런 현금흐름도 가져다주지 않으므로 보유자는 오직 시세차익만으로 수익을 내야 한다. 내재가치가 없기 때문에 보유자 본인도 시장가격의 적절함을 평가할 수 없어 시가의 하락처럼 내가 손해보는 상황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게 되고 다음의 순진한(?) 신규투기자가 유입되어 나의 매수가보다 더 비싼 가격으로 내가 보유한 가상증표를 사 주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처지로 전락하게 된다.

반면에 채굴업자들은 폭리를 취한다. 가상증표를 채굴하는데 전기료가 엄청 들어간다고 하더라만 가상증표 채굴의 한계비용(marginal cost)이 전기요금이라면 현재의 시세를 보건대 채굴업자들이 취한 폭리는 천문학적이리라 추측된다. 가상증표의 보유자들이 아무리 자유로운 의지로 그것을 구입했다고는 하나 채굴의 한계비용과 현재의 시세를 감안하면 지나치게 불공정한 시장가격이라고 할 수 있다.

스스로를 거래소라고 자칭한 가상증표 중개업자들은 더 큰 문제다. 일반적으로 도박에서 가장 많은 이익을 얻는 자는 결과적으로 도박장의 업주이다. 주지하다시피, 하우스라고 부르는 도박장의 업주는 자릿세를 받는데 판돈이 클수록, 그리고 많은 호구(?)가 도박에 뛰어들수록 자릿세 수입은 커져서 대규모 하우스의 도박판에서 돈을 가장 많이 따는 사람은 다름 아닌 업주가 된다. 중개수수료를 받는 가상증표 중개업자들이 정부의 규제방안에 기민하게 대처하면서 가상증표 거래의 합법화를 주장하는 이유다.

내가 법률은 잘 모르겠다만, 가상증표 중개업자들이 벌집계좌를 운영한다든가, 별다른 근거도 없이 블록체인 기술이 발전하면 가상증표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현혹한다든가, 가상증표를 마치 이상적인(ideal) 화폐인 것처럼 포장하는 등 막연한 기대감을 일으키는 방법으로 사실상 투자를 권유하는 행위는 유사수신행위에 해당하는 것이 아닌가? 만약 실정법에 비추어 이런 행위들이 위법한 것이라면 정부는 국회의 입법을 기다리지 말고 실정법에 따라 바로 단속해야 한다고 본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투자자가 참으로 갖기 힘든 덕목은 바로 손절(損切)의 용기이다. 손절매(損切賣) 타이밍을 잡는 것만큼 어려운 건 없더라. 복권에 당첨되는 것처럼 가상증표로 몇 갑절의 이익을 내봤자 별로 멋지지도 않다. 내가 손해보는 것이 두려워서 누군가의 대학등록금을 기다리거나 나를 대신할 누군가의 담보대출금을 기다리는 일은 이제 그만 두는게 좋겠다.


[1] 경제석학들도 비트코인을 비관적으로 본다.
http://forestofscholar.blogspot.kr/2018/01/blog-post_27.html

[2] 가상화폐는 화폐가 아니다!
http://forestofscholar.blogspot.kr/2018/01/blog-post_22.html

[3] 블록체인도 해킹에 취약하다!
http://forestofscholar.blogspot.kr/2018/01/blog-post_9.html


#가상화폐  #비트코인  #암호화폐  #코인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최저임금 인상이 잘못된 이유 알려준다.

북핵 협상게임의 내쉬균형

The Dotard and Rocket 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