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gotiator or Broker?



요즘 남북정상회담 관련 뉴스를 보면서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문재인이 김정은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남북정상회담 뉴스를 보면 때로는 우리 정부 당국자의 입으로, 때로는 언론의 북한관련 취재기사로 북한이 원하는 사항들만 보도되고 있을 뿐 문재인 정부가 북한에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이니, 쌍중단-쌍궤병행이니 아무리 외교적 수사로 꾸미려 해도 결국 문재인 정부가 주장하는 북한의 ‘핵동결->폐기’[1]는 북한이 주장하는 ‘단계적 조치’와 같은 것입니다. 정전체제를 끝내고 미국과 종전협정을 맺자는 것도 북한의 오래된 숙원으로서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정권이 대를 이어 요구하던 것이었습니다[2].

계약을 하려면 디테일한 계약사항들을 꼼꼼하게 살펴봐야 합니다. 보도들을 보니 문재인은 아마도 남북미중의 종전협정 전에 남북의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추진하려는 것 같네요[3]. 저는 지금 남북의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에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협정의 디테일이 나오기 전에는 찬반여부를 유보하겠습니다[4].

중요한 점은 실제의 협정은 북핵의 폐기가 완료된 후에 논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는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역시 북한이 요구하던 것이지 문재인이 김정은에게 요구하는 것은 드러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협상이란 Negotiator들이 서로 원하는 요구사항을 주고받는 게임이지요. 따라서 문재인이 Negotiator라면 김정은이 문재인에게 요구하는 것처럼 문재인도 김정은에게 요구하는 사항이 있어야 합니다. 서로 상대에게 요구하는 사항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서로 무엇을 수용할 것인지 논쟁과 설득을 해나가는 것이 협상이죠.

Time지는 문재인을 Negotiator라고 한 바 있죠. 문재인은 자신을 Driver라고 칭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재인은 언제부턴가 스스로 자신을 ‘중개자’라고 바꿔 말하면서 마치 트럼프와 김정은의 사이를 주선하는 Broker를 자처하고 있습니다. Broker는 Negotiator도 아니고 Driver도 아니지요.

북한 비핵화 협상게임은 남북정상회담-북미정상회담의 2단계 게임입니다. 그런데 게임의 구조가 잘못되었습니다. 2단계 협상게임에 참여하는 3명의 플레이어 중 한명은 Negotiator가 아니라 Broker라 자처하면서 마치 자신에게 비핵화 협상의 책임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1차 협상인 남북회담에서는 김정은의 의도대로 협상이 타결되는 것이 뻔하고 이러한 1차 협상의 결과가 2차 협상에서 트럼프의 전략적 선택에 제약요인으로 작용하기 쉽습니다. 트럼프로서는 협상에서 불리한 상황에 몰리는 것이죠. 따라서 2차 협상이 파투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한국은 한반도 문제를 남 vs. 북의 대립구도로 파악하려 하지요. 대립을 끝내고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남북대화와 경제교류를 통한 북한의 개방을 이끌어 내려고 합니다. 중국은 한반도 문제를 미 vs. 중의 패권경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에도 모택동은 미국이 압록강을 넘을까봐 두려워 ‘항미원조전쟁’의 참전을 결심했었죠.

북한은 한반도 문제를 북 vs. 미의 대립구도로 몰아가려 합니다. 북한은 정전협정을 미국과의 종전협정으로 바꾸기를 원하고 종전 후 주한미군의 철수를 노리고 있지요. 북한이 원하는 종전협정의 당사국은 북한과 중국을 일방으로 하고 상대방은 미국입니다. 이승만이 정전협정에 서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북한이 추진하는 ‘통미봉남’의 명분이 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입장도 중요합니다. 미국은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막는데는 관심이 있으나 한반도 문제에 직접 개입하고 싶어하지는 않았습니다. 부시의 ‘2개의 전쟁’ 전략은 중동과 극동에서 동시에 전쟁을 벌이겠다는 것이 아니라 한국과 일본이 극동에서 동맹의 책임을 부담해준다면 미국은 중동과 극동에서 동시에 전쟁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 정책은 미국의 외교기조가 비개입주의로 돌아섰음을 의미했습니다. 전략적 인내는 동북아의 안보는 한국과 일본이 맡고 미국은 발을 빼겠다는 것과 같았습니다.” [5]

우리는 한국이 북한의 핵으로 인한 대립의 당사자라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남한의 국민들이 선출한 협상의 대표선수가 남한이 당사자가 아니라 마치 Broker인 것처럼, 북한의 핵탄두가 남의 일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대단히 불쾌합니다.

이미 문재인이 김정은의 단계적 조치에 동의해준 듯 하니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CVID 방식의 북한의 비핵화는 물 건너 간 것 같습니다. 추후 북미정상회담을 지켜봐야 하겠죠.

문재인은 북한에 보상 아닌 선물을 제공하려 할 것입니다. 개성공단 재개, 서해공동어로구역 설정, 종전선언 같은 것을 제공하려 하겠죠. 남북정상회담에서는 문재인의 ‘담대한 제안’(?)으로 ‘통 큰 합의’(?)를 이끌어낼 것이 뻔합니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보상이든 선물이든 북한의 핵폐기와 검증이 완결되기 전에 시작된다면 문재인은 Devil’s Advocate입니다.


[1] '北조치는 핵동결' 규정한 문 대통령…북핵폐기 '입구' 들어서나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10042477

[2] 저는 실효적인 종전협정은 625전쟁의 당사국인 남북미중 4자가 체결해야 한다고 봅니다. 미국과 중국이 없는 종전선언은 선언적 의미만 있을 뿐이죠.

[3] 저는 지금 남북한 평화협정에 반대하지는 않습니다만 그런 종이쪼가리가 평화를 지켜준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체임벌린은 뮌헨협정을 맺고 런던으로 돌아와 협정문을 흔들어 보이며, 이것이 “우리 시대의 평화”의 약속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고작 11개월 후에 히틀러는 2차 대전을 일으킵니다.

[4] 남북한 간에는 7.4남북공동성명-남북기본합의서-6.15공동선언-10.4선언으로 이어지는 평화협정이 이미 체결되어 있습니다. 안지켰을 뿐이죠. 6.15공동선언은 ‘낮은 단계의 연방제’에 오염되어 있습니다. 10.4선언은 북한을 지원하기 위한 경제협력사업들 위주의 내용이라 보편원칙을 규정하려는 국제법의 성격을 갖는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남북한의 평화협정은 남북기본합의서의 내용을 업데이트 하면 된다고 봅니다. 남북기본합의서는 1991년 노태우 정부가 북한과 체결한 협정으로서 정식명칭은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입니다. 남북화해와 교류협력을 규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놀랍게도 남북의 상호불가침 조항들까지 이미 포함하고 있죠. 지금까지 남북의 어떤 약속들보다도 구체적이고 진보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국제적인 협정으로서 손색이 없죠. 이렇게 훌륭한 평화협정이 이미 체결되어 있는데 북한이 지키지 않았을 뿐입니다. 남북기본합의서 내용을 링크합니다:
http://www.law717.org/board/etc/bbs/view.asp?C_IDX=57&C_CC=bbsA

[5] 무서운 이야기: 벼랑끝 전술과 위험의 경사구조
https://forestofscholar.blogspot.kr/2017/12/blog-post_81.html


#남북정상회담  #단계적조치  #북미정상회담  #평화협정  #Broker  #Devil'sAdvocate  #Negoti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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