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와 예비경선



#1. 메이저리그

북미의 메이저리그는 내셔널리그와 아메리칸리그로 구성된다. 내셔널리그에 15개팀, 아메리칸리그에 15개팀으로 총 30개팀이 등록되어 있으며, 29개팀은 미국에 연고지를 두고 있고 토론토 블루제이스는 캐나다 토론토를 연고로 하고 있다. 메이저리그는 양대 구성리그 내에서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를 거친 챔피언끼리 월드시리즈를 펼쳐 메이저리그 전체의 챔피언을 결정한다.

#2. 대선

한국의 대선에서는 항상 후보난립의 문제가 발생한다. 예컨대, 이번 대선의 경우 후보가 15명이나 되었다. 후보난립의 문제 때문에 대선은 사실상 2중 리그로 치러진다. TV토론에 초청되는 주요 후보들의 1부 리그와 기타 후보들의 2부 리그가 그것이다. 유권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선거에서 2부 리그의 존재가치는 없고 1부 리그에서 선택지는 제한적이었다.

하나의 상품을 구매하는데 선택지가 많을수록 소비자의 효용은 증가한다. 따라서 유권자가 많은 선택지를 요구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매번 1부 리그에서 2-3개의 선택지 중에서만 골라야 하니 결과에 대한 유권자의 만족도는 낮아진다.

대선의 1부 리그에서 항상 제3후보는 존재했다. 특히, 2002년의 정몽준과 2012년의 안철수는 캐스팅보트의 의미를 넘어 유력후보의 지위였으나 후보단일화로 소멸했다. 여러 이유가 있었겠으나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무소속 후보가 기성정당의 조직력을 이길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대선의 경우는 예외적이었다. 이번에는 1부 리그도 후보가 5명이나 되었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짧았던 선거운동 기간 동안 유권자는 5명의 후보를 충분히 검증하고 심사숙고하지 못했다는 단점이 발생했다.

한국에서 1부 리그의 선택지가 적으면 유권자의 만족도는 낮고 후보가 많으면 유권자의 합리적 선택을 방해하는 현상은 유권자의 경선참여도는 적고 본선만 흥행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메이저리그에서 구성리그는 흥행실패하고 월드시리즈에만 관심을 두는 셈이다.

#3, 사당(私黨)

정당의 사당화는 구성리그에서 선택지를 축소시켜 유권자의 만족도를 낮춘다. 메이저리그의 주축은 어디까지나 구성리그인 내셔널리그와 아메리칸리그인 것처럼 미국의 경우 본선 못지않게 양당의 예비경선이 경쟁적이다. 샌더스가 민주당 경선에 참여하여 치열한 경쟁을 벌이지 않았다면 힐러리의 지지율이 그리 높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이라면 샌더스는 사당화된 기성정당의 경선에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다.

과거 3김시대까지 한국정치는 한 명의 보스를 중심으로 정당이 세워지고 운영됐었다. 정책과 정치적 신념은 사실상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3김시대 이후로도 한국의 정당들은 보스 한명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사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예컨대, 새누리당은 박근혜당이었다. 민주당도 사당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정책비판을 하거나 경선의 진행과정에 문제를 제기해도 내부총질이라며 묵살당하는 것도 민주당이 사당화되었기 때문이다.

대선에서 구성리그인 예비경선이 흥행하려면 정당의 사당화 행태를 없애야 한다. 정당 내에서 여러 정파의 존재를 인정하고 공존하면서 예비경선이 충분히 경쟁적이어야 유권자의 선거인단 참여가 활성화될 것이다.

#4. 플랫폼정당

최근 영국의 노동당과 미국의 민주당 등 세계 선진 정당들은 당원의 감소를 겪으면서 유권자와의 일상적 소통과 공감, 연대와 정책형성을 위해 플랫폼을 구축해 활용하고 있다. 공직후보의 공천과정에서도 정당은 플랫폼으로 기능해야 한다. 즉, 각기 나름의 정책과 캐릭터를 갖춘 예비후보들이 공정하게 경쟁하면서 우수한 정책들이 정당으로 수렴될 수 있도록 대중정당은 플랫폼정당으로 변모해야 한다. 플랫폼정당이 완성된다면 다음번에는 공화당에서 새로운 실력자가 나타나 트럼프가 후보로 선출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

#5. 경선

누구도 시장에서 지배력을 행사할 수 없을 때 그 시장은 경쟁적이라고 말한다. 한국의 대선에서 예비경선이 경쟁적이었던 사례는 찾기 어렵다. 매번 정당의 오너(?) 또는 오너의 후계자가 자신의 지분(?)으로 대세론을 형성하여 경선은 요식행위로 치부되기 일쑤였는데, 예외적인 사례가 한번 있었다. 2002년 민주당 경선에서 노무현은 당시 대세론을 형성했던 이인제를 꺾고 각본 없는 드라마를 만들었다. 노무현의 사례를 제외하면 정당의 예비경선은 드라마 없는 각본이었던 셈이다.

고스톱이야 동네마다 규칙이 조금씩 다르더라만, 야구를 하는데 양팀의 주장들이 합의하여 경기규칙을 정하도록 했다면 오늘날 메이저리그는 없었을 것이다. 한국의 정치판에서 내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는 것은 경선주자 캠프의 대표들이 모여 경선규칙을 합의하도록 하는 관행이다. 선수들이 모여서 경기규칙을 정하는 셈이 아닌가. 서로 자기에게 유리한 규칙을 주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다보면 아무리 공정하게 협의하는 척 하더라도 결국 당권파의 입맛에 맞는 룰이 채택되는 것은 너무나도 뻔한 일이다.

애초에 선수들이 합의하여 경선규칙을 정해라는 발상 자체가 공정하지 못하다. 어떤 선수도 자신이 뛸 경기의 규칙에 간여하지 못하도록 제3의 권위로부터 주어지는 외생적 경선규칙이 마련되어야 한다.

#6. 예비경선 법제화

제3의 권위로부터 주어지는 외생적 경선규칙을 마련하는 방법은 2가지가 있다. 첫째는 모두가 수용하는 합리적 전통이 시간이 지나면서 관습으로 굳어지는 경우다. 둘째는 헌법적 권위를 지닌 국회가 경선규칙을 입법화하는 것이다. 아직도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고민해야 하는 한국에서는 모두가 수용하는 전통이 관습으로 정착되기란 요원하다. 따라서 수용성이 높은 후보선출제도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이 예비경선제도를 법제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1) 정당별로 코커스 또는 프라이머리 중 택일하여 경선을 실시하도록 법제화한다. 법제화를 하면 매번 경선룰을 두고 후보간 갈등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할 수 있고 공정성에 대한 시비도 없앨 수 있다.

2) 정당이 프라이머리를 선택하는 경우 중앙선관위에 위탁하여 경선을 주관하도록 한다. 코커스 또는 프라이머리 중에서 택일해야 한다면 대중정당들은 프라이머리를 선택할 것이다. 대중정당의 경선에서 심판의 역할을 제3자인 선관위가 주관해야 당권파라고 해서 경선의 진행절차를 마음대로 좌지우지하지 못할 것이고 경선을 엉망으로 관리하지도 않을 것이다.

3) 무소속 예비후보도 대중정당의 프라이머리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 그래야 샌더스와 같은 제3의 실력자가 진입장벽 없이 경선에 참여하게 되고 치열한 경쟁을 통해 선출된 대중정당의 후보가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 덤으로, 나름의 정책과 캐릭터를 갖춘 예비후보들이 공정하게 경쟁하면서 그들의 정책들이 대중정당으로 수렴되어 플랫폼정당화도 가속화된다.

4) 경선제도를 법제화한다면 코커스 또는 프라이머리를 통하지 않은 자는 본선 후보등록을 불허해야 한다. 무소속 후보자가 후보단일화를 노리고 경선에 참여하지 않은 채 본선에서 주요 후보의 지위를 얻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또한 너무 많은 군소후보들이 난립하여 2부 리그의 행정비용을 발생시키는 것과 정당정치가 저해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5) 정당 간 당원 수에 차이가 있으므로 코커스를 실시하는 경우 통합경선을 하기는 어렵겠지만, 프라이머리를 선택하는 정당들에게는 정당통합경선을 허용한다. 통합경선을 실시하면 소수정파가 분당할 유인이 사라지므로 정당의 분열을 예방할 수 있다. 또한 복수의 정당이 통합경선을 실시함으로써 미리 소연정을 확약하는 것도 가능하게 된다.

6) 통합경선을 실시하는 경우 후보자가 난립하는 것을 방지하고 효율적으로 경선을 실시하기 위해 사전 컷오프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매 선거 때마다 상황이 다를 것이므로 컷오프 기준은 심판의 역할을 하는 중앙선관위가 매번 본격적인 경선시즌이 도래하기 전에 정당대표자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정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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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선 끝난 지가 언젠데 웬 경선타령이냐고 하겠지만, 어느 정당의 누구도 차기의 유력주자가 될지를 모를 때 경선규칙을 논의하는 것이 공정하다고 생각합니다.

2) 이 글은 2017년 7월 1일 제 페이스북에 썼던 글입니다. http://fb.me/5VhpGPStB


#경선  #대선  #코커스  #프라이머리  #플랫폼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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