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의 전설을 폐기하라!




□ 프롤로그

“미국을 위하여 한국이 중국 핵미사일의 표적이 되어야 하나?”

이 도발적인 질문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경악하면서 ‘당연히 그리 해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한국이 미국의 식민지로 취급당하고 우리가 미국인의 총알받이로 내몰리는 것 같아 격앙되었고, 이래서 반미성향의 운동가들이 정권을 잡아야 우리의 생명을 지키고 미국으로부터 자주적이고 당당한 나라가 된다고 생각했다. 감정을 자극하는 질문에 자존심이 상했고 이성적으로 답하기 어려웠다.

오래전부터 사드(THAAD)에 대하여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전설이 진보진영을 지배했다. 요지는 한국이 미국 MD시스템의 전초기지가 되면 미 vs. 중 핵전쟁 발발시 중국은 미국 본토로 가는 자신의 미사일을 추적하기 위한 MD기지인 한국부터 핵공격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나도 경악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드와 MD에 대한 거부감이 무뎌지게 되었다. 사실은 굳이 사드가 아니어도 이미 중국은 한국의 주요 지점들을 향해 핵탄두를 장착한 미사일을 조준해 두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국도 한반도 전체를 레이더로 감시하고 있으면서 한국에 배치되는 X밴드레이더에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도 부당하다고 생각했고, 동맹군인 주한미군이 자신의 필요에 의해 사드를 배치하는 것도 수용하게 되었다.

최근 사드배치로 인해 갈등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사드 관련 몇 가지 자료들을 찾아보았다. 정치인들이야 자기가 속한 세력의 우위를 위해 다소 감정을 자극하는 표현도 섞어가면서 자신의 주장을 대중에 호소하겠지만, 정치인도 아닌 내가 그런 감정적인 호소에 휘둘릴 필요도 없고 보다 이성적으로 가치판단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도 나름 진보진영에 속해 있는 사람이지만 안보에 진보와 보수가 따로 있겠나.

□ 사드는 미국의 중국 감시용 레이더?

먼저 한국에 배치된 사드는 미국의 중국 감시용 레이더라는 주장부터 허구임을 확인한다. 나도 이 주장을 믿고 있었는데 자료를 찾아보니 북한과 중국의 동부.동북부에서 태평양으로 날아가는 미사일은 이미 일본에 배치된 X밴드레이더가 추적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의 아오모리현과 교탄고시에 X밴드레이더가 설치되었는데 이 두 곳에는 사드포대를 배치하지 않았으므로 이 시설들은 종말단계 요격용이 아니라 전진배치모드의 레이더임이 확인된다. 일본에 배치된 두 개의 X밴드레이더가 이미 한반도 전체와 중국의 동부 및 동북부를 모니터링하므로 한국에 배치된 X밴드레이더는 전진배치모드로 운용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성주의 사드포대는 북한 미사일에 대한 방어용 무기가 맞다.

사드는 중국이 미국을 향해 숨겨놓은 2차타격용 전략자산을 찾기 위한 레이더라는 주장도 논리적 비약이다. 중국의 중부 또는 서부에서 미국으로 타격한다면 태평양이 아니라 북극해 방향으로 미사일을 쏘게 되므로 한국과 일본의 X밴드레이더는 이와 무관하다. 게다가 지상의 레이더는 공중으로 향해 있으므로 공중으로 발사된 비행체를 추적하는 것이지 지상에 숨겨놓은 전략자산을 찾지는 못한다. 레이더가 아니어도 미국은 위성으로 중국의 전략자산을 감시하고 있을 것이다.

□ 북한 미사일 방어무기로서의 효용

다음으로, 북한 미사일에 대한 방어무기로서 사드의 효용을 판단해보자. 주지하다시피, 사드는 한국의 남부지방으로 날아오는 미사일을 요격한다. 수도권을 방어하지는 못하지만 유사시 미 증원전력이 도착할 수 있도록 하며 남부지방의 공업시설과 군수물자가 생존해서 야전군을 지원하고 전후 복구가 가능토록 하는데 도움이 된다.

사드배치로 인해 영남권의 패트리어트를 수도권으로 이동배치한다고 한다. 사드의 요격고도가 50~150km라고 하니 남부지방의 저고도 방어망을 구축할 필요가 있겠지만, 단기적으로는 우선 수도권 방어망을 강화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북한이 남한으로 미사일을 쏜다면 저고도 미사일을 쓸 것이므로 사드는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있다. 공학적, 기술적으로야 나는 잘 모르겠다만 우리가 개발하고 있는 L-SAM의 요격고도가 사드와 같으므로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L-SAM도 필요없다는 말이 된다. 즉, L-SAM은 필요해서 개발하면서 사드는 쓸모없다는 주장은 틀린 것이다. 심지어 해군은 이지스함을 갖추고도 SM-3 미사일이 없어 이를 보유하길 원하는데 SM-3 미사일은 요격고도가 500km나 된다고 한다. 우리 군은 고고도 요격미사일도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사드의 성능에 대한 의구심도 있다. 실전에서 요격에 성공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대략적으로 계산해보자. 사드미사일의 요격확률이 최소 80%는 된다는 것은 대부분 인정하는 듯 하다. 그러면 실패확률이 20%나 된다는 것인데 요격미사일을 두 발 동시에 쏜다면 실패율은 20%*20%=4%로 줄어든다. 따라서 북한 미사일 한 발당 사드를 두 발씩 쏜다면 요격률은 100%-4%=96%로 높아진다. 거기다가 다층방어망을 구축하여 사드가 실패시 저고도에서 천궁이나 PAC-3로 요격기회가 한번 더 있다면 요격성공률은 100%에 근접할 것이다.

만약 북한이 미사일을 30개 이상 동시다발적으로 쏜다면 사드로 모두 요격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게다가 중고도든 저고도든 미사일방어망을 아무리 다층적으로 촘촘히 구축한다고 해도 방어범위는 지역적 제한이 있고, 한국의 모든 지역을 빠뜨리지 않도록 미사일방어망을 촘촘히 구축하는 것도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사드든 뭐든 요격시스템의 방어능력은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는 점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또한 사드는 한국이 미국의 MD체제에 동참하는 시발점이라는 것도 부인할 수는 없을 것 같다.

□ 사드반대 주장에 재갈을 물리지는 말아야

이상의 논리로 비록 요격시스템의 방어능력이 제한적이라 할지라도 나는 사드배치를 찬성하지만, 사실을 일부러 왜곡하거나 의도적으로 모욕적인 주장이 아니라면 반대론자들 역시 자유로이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정부가 사드를 배치하기로 결정했으니, 반대목소리는 대외 협상에서 정부의 협상력을 높여 준다. 한국에서 반대론의 존재는 향후 미국제 무기도입시 계약조건 협상에서 정부의 레버리지로 작동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국내에서의 반대시위는 한국이 MD체제로 편입되는 것을 섭섭해하는 중국에 대한 외교적 성의(?)로 기능할 수 있겠다. 롯데가 중국에서 철수하는 등 중국의 보복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가 커지고 있지만 국내에서의 반대시위와 중국에 대한 우호적 제스처는 중국의 경제보복을 무디게 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 대안옵션으로서 군비경쟁의 타당성

북한의 4차 핵실험 당시 나는 박근혜 정부가 ‘공포의 균형’ 달성을 미국에 우선 요구하리라 예상했었는데, 예상외로 한국형 3축체계를 먼저 가속화하는 것을 보고 의외라고 생각했었다. 아마도 미국의 핵확산방지 정책기조, 한국 정부의 국제정치적 입지, 국방부와 군의 군비증강사업 선호 등 3자간의 이해(利害)가 맞아떨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두고 군을 비난한다든가 전임 정부를 비난할 수는 없다고 본다. 어느 조직이든지 자기조직의 예산증가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고 선의의 의사결정자는 여러 조직의 요구를 검토하면서 당대의 사회적 가치관에 기초하여 재정의 최적배분을 위한 의사결정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행동에 대한 트럼프의 선택지가 그리 많아보이지는 않는다. 선제타격 등 군사적 대응은 전면전의 위험 때문에 가장 후순위로 놓일 것이고, 북한이 원하는 평화협정도 한국을 배제한 채로 북핵을 동결하는데 합의하자는 것이라 선택하기 곤란할 것이다. ‘원유공급 중단’이라는 외교적 제재가 선호되는 카드였는데 결과는 ‘원유공급 제한’으로 둔갑해버려 중국이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만 드러났다. 트럼프가 가장 후순위의 선택으로 내몰리지 않을 명분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트럼프가 전쟁을 하고 싶어 미친 사람은 아닐 것이다. 그는 후보시절 김정은과 햄버거를 먹으면서 대화하겠다고 말했고 심지어 주한미군을 철수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던 트럼프도 점차 자국의 국내상황과 공화당의 정책기조에 길들여지고 있다. 게임의 구조가 변했으니 의사결정자의 사고의 틀도 변경되어야 한다. 한국의 지도자들 역시 지금까지 자기진영의 낡은 주장에만 얽매이지 말고 변경된 게임에서 선택가능한 전략들을 다시 점검하고 최적의 선택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한국의 군사력을 증강하기 위한 군비지출은 북한과 대화를 반대하는 미국의 강경파와 미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삼는 트럼프의 이해(利害)가 일치하므로 한국이 주체적으로 미국과 거래할 수 있는 실현가능한 대안이라고 본다. 또한 군비경쟁은 언젠가는 북한이 먼저 지치도록 하는 방법으로서 트럼프의 극단적 선택을 지연시킬 대안으로 적절하다고 본다. Kill Chain이든 KAMD든 KMPR이든 한국의 국방비를 조기집행하면서 미국산 무기체계 도입을 확대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 에필로그

김정은이 지난번에 쓴 내 글을 읽었나[*]? 북한이 위험의 경사구조를 만들고 있다. 북한은 괌 주변을 직접 타격하는 것은 포기했지만 미사일 사거리를 점차 늘리고 있다. 아마도 차후에는 하와이의 태평양사령부에 타격능력을 보일 것이며 그 다음에는 미국 본토로 핵탄두의 운반능력을 입증하기 위해 위험을 계속 점증시킬 것이다. 그러면서 도발의 빈도가 빨라지고 있는 것을 보면 북한도 조급해하는 것 같다. 트럼프의 결단을 재촉하는 것이다. “미국을 위하여 한국이 중국 핵미사일의 표적이 되어야 하나?” 이 질문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주객이 뒤바뀐 채로 남아있다.

“서울을 위하여 LA가 북한 핵미사일의 표적이 되어줄 것인가?”

한미 양국의 위정자들은 어떤 형식으로든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시간이 그리 많이 남은 것 같지는 않다.


[*] 무서운 이야기: 벼랑끝 전술과 위험의 경사구조
https://forestofscholar.blogspot.kr/2017/12/blog-post_81.html


-------------------------------------------------------------
** 9월 17일에 제 페이스북에 썼던 글입니다. http://fb.me/2kXEJzOzS


#사드  #THAAD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최저임금 인상이 잘못된 이유 알려준다.

북핵 협상게임의 내쉬균형

The Dotard and Rocket Man